프로그램 : 포커스 온 충무로

해피엔드 Happy End

정지우 | Korea | 1999 | 99’ | color

Synopsis

은행에서 6년간 근무하다 실직한 지 3개월이 된 서민기는 실직 상태의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새삼스레 맛보는 일상의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다. 그의 그런 생활이 가능한 것은 성공한 커리어 우먼인 아내 최보라 덕분. 바쁜 아내 대신 딸 서연을 돌보면서 공원에서 소설도 읽고, 요리책을 펴놓고 음식을 만들고, 분리수거 요령도 터득해 가는 서민기. 그의 아내 최보라는 대학 시절 애인이었으나 입대로 헤어졌던 김일범과 우연히 재회한 후 남편 몰래 그와 상습적인 만남을 거듭하고 있다. 그녀는 5개월 된 딸과 믿음직했던 남편을 여전히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김일범의 한결같은 사랑에 감동하거나 그와 만남에서 빛나는 젊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서민기가 아내의 불륜을 눈치채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밀회 장소인 김일범의 오피스텔까지 알아내게 되면서 그들 세 사람의 서로 다른 욕망이 팽팽한 긴장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서민이기는 아내에 대한 배반감과 상실감에 괴로워하면서도 아내에겐 내색하지 않은 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자신에 대한 김일범의 집착이 점점 강해져 가는 것을 느끼고 심란해진 최보라는 마침내 김일범과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결심하는데. 서로 다른 해피 엔딩을 꿈꾸는 사람들, 그들의 애정, 집착, 살의의 삼각관계는 예상치 못한 엔딩을 향해 치닫는다.

Comment

정지우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파격적인 치정극으로 화제를 모으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멜로와 스릴러가 결합된 스토리로 <사랑니>, <은교>, <침묵>으로 이어진 그의 필모그래피의 원형을 이룬다. 세기말과 IMF 이후의 한국 사회의 풍조를 잘 보여주는 밑그림 위에 세 명의 주요 캐릭터의 특징과 사건을 잘 쌓아 올린 영화다.

은행원이었던 민기(최민식)는 실직을 하자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아내 보라(전도연) 대신 육아와 살림을 떠맡는다. 그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다음에 헌책방에서 연애 소설을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장을 보고 청소를 하는 단순한 일상이지만 중산층 가정을 이루며 별 문제 없이 살고 있다고 믿었던 민기는 아내의 차 안에서 속초행 고속도로 통행료 영수증을 발견하고 의아해 한다.

사실 보라는 민기를 만나기 전 사귀었던 일범(주진모)과 재회를 한 뒤로 그의 오피스텔을 드나들고 있었다. 그 공간은 보라가 더 이상 민기와는 느낄 수 없는 열정이 되살아나는 밀폐되고 은밀한 곳이다. 일범은 20대 초반 보라의 사진과 둘이 함께 꼈던 커플링까지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보라에 대한 순정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만남이 거듭 될수록 일범의 욕심을 커지고 보라와 그녀의 딸까지 함께 하는 새로운 가정을 꿈꾸게 된다. 집까지 찾아온 일범을 달래기 위해 지연은 잠시 외출을 해야 했고, 아이를 재우기 위해 분유에 수면제를 타는 일까지 저지른다.

아이가 응급실에 다녀오는 사건 이후 민기는 보라를 본격적으로 의심하게 되고 그녀의 행적을 조사하게 된다. 이 즈음 민기는 헌책방에서 연애소설 대신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하고 치밀한 복수를 계획하게 된다. IMF로 인한 기업 도산과 대규모 실직 사태, 전업 남편의 등장, 싱글들의 새로운 주거 형태로 등장한 오피스텔, 폴라로이드 사진기 등 영화 속에는 1990년대 후반의 사회 현상과 새로운 트렌드가 잘 묘사되어 있다. 젊은 시절 최민식, 전도연, 주진모 배우를 보는 즐거움도 크다. 모든 사건이 종결된 뒤 덧붙여진 에필로그도 놓치지 마시길 권한다. 보라의 운명을 암시하는 몽환적인 이 장면은 정지우 감독의 인장 같은 것이다. (이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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